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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28. 22:51 그리움

 

 

 

아버지의 아들이어서 그런 것일까? 세면 후에 혹은 면도를 하는 중에 거울 앞에 서게 되면 내 모습을 보는데, 내 모습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진지하게 아버지를 닮은 내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사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간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아버지는 정말 미남이셨다. 그래서 뭇 여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어머니가 여성으로서 본능적인 위험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때때로 여인들에게서 유혹을 받으시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결코 그 여인들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으셨다. 오직 어머니만을 사랑하셨고, 그 분 곁을 한 번도 떠나지 않으셨다. 지금 내 얼굴에 멋지게 생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다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유전자를 받고서도, 아버지의 그 멋진 모습을 온전히 닮지 못하여 아버지 만큼 미남이 되지 못한 것, 아버지에게 죄송스럽다. 그리고 아버지를 쏙 빼어닮은 손자를 낳아드리지 못한 것 또한 죄송스럽다.

 

아버지는 30대까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40대 이후에는 순천에 있는 병원의 원무과에서 근무하셨는데 생각이 깊고 또 위엄이 있는 분이셨다. 1972년도였던가? 한참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에 대하여 대국민 홍보를 할 때, 집에서 홀테로 벼를 훑고 계시던 아버지에게 학교 선생님이 찾아왔다. 팜플릿까지 가져온 그 선생님은 집 마루에 앉아 아버지에게 10월 유신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가지로 논증하며 설득을 했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그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선생님,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모든 것을 다 아실만한 분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듣던 그 선생님은 아무 말없이 팜플릿을 챙기더니, 아버지에게 눈인사를 한 후 고개를  숙인 채 집을 떠나갔다.

 

나는 그때 그 대화가 조용했지만 심각한 대화라는 것을 알았다. 그 팜플릿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내용이 10월 유신을 단행하면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또 번영하게 되지만, 하지않으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이 집을 찾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박정희 정권은 10월 유신을 단행했고, 그로 인해 대통령이 심복의 총탄에 맞아 비참하게 죽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그 시대를 부릅뜬 눈으로 지켜본 훌륭한 분이셨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신 아버지, 그 분 생각에 잠겨 내 모습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를 뵙고 싶다. 잘못을 꾸짖으실 때는 무서우셨지만 평소에는 무척도 다정다감하셨던 아버지, 그 분을 오늘 정말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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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