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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15. 21:48 첫 느낌

 

 

 

2 주일 전부터 얼굴에 변화를 주려고 수염을 깎지를 않았다. 그랬더니 제법 콧수염과 턱수염이 듬성해졌다. 거울을 보았더니, 수염이 없을 때와는 다른 풍모를 보였다. 수염이 약간 치켜 올라간 눈썹과 조화를 이루어 아주 사내답게 보였고, 멋이 있었다. 그대로 시대를 조선시대로 옮겨 놓으면 선비나 장수가 될만 했다. 아내도 그런 나의 모습이 좋은지 수염을 깎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다. 그래서 2 주일 후에 깎으려고 마음먹었던 수염을 또 며칠 동안 깎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들보다 수염이 자라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롭게 수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 수염이 짙어질수록 나의 모습은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닮아갔다. 수염이 자란 나를 큰아버지와 비교한 것은 친척 중에서 오직 온전하게 수염을 기르신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분은 큰아버지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큰아버지는 아랫턱 부분에 하얗게 수염이 나셨었다. 비록 임꺽정처럼 온통 얼굴을 뒤덮는 구레나룻은 아니었지만, 그 수염으로 인해 큰아버지의 길고도 넓은 얼굴은 더욱 위엄이 있어 보였었다.

 

그렇게 큰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내 모습에 내 자신 매료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엄연한 공인(公人), 더 이상 수염을 기를 수는 없는 일이어서 드디어 오늘 수염을 깎았다. 그 멋진 풍모를 유지시켜 주던 수염이 그만 면도기에 밀려서 사라지고 말았다. 수염을 깎고 거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있는데, 어쩐지 허전했다. 그래서 그루터기만 남은 나의 콧수염과 턱수염을 연신 어루만졌다. 그리고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사나이의 기상을 보여줄 수염을 이렇게 검푸르도록 빡빡 깎아 놓으니, 꼭 구중궁궐의 내시만 같았다. 드라마를 보아서 알겠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소수의 내시만이 전횡을 했을 뿐 대부분의 내시는 힘이 없는 존재였다.


그러고 보면 수염을 깎는다는 것 자체가 참 사내에겐 견딜 수 없는 수모다. 수염을 깎는 것이 당연시되고 그렇지 않은 것이 의문시되는 문화이고 보니,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어쩌면 우리가 마구 깎아버리는 콧수염과 턱수염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나이의 근원적인 힘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그 귀한 것을 우리가 천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 남성들이 마마보이와 같은 경향을 보이는 것을 꼭 어머니의 과잉보호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사나이들이 사나이의 힘이요, 상징인 수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꾸만 깎아온 탓이 아닐까? 언젠가 다시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자는 주장이 세력을 더해 간다면, 나의 이 주장이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자신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아무 일도 없는 양 깎고 있으니,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사회적 통념 및 습관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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