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생 녀석과 마주쳤다. 반가워서 불쑥 악수를 하면서 녀석에게 " 잘 지내냐, 몸은 건강하고?"라고 말하니 녀석은 "그래, 네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녀석이 내 손을 잡더니 "야, 아까 악수하는데 네 손 진짜 부드럽더라. 꼭 여자 손 같아"라고 한다. 내가 붙잡고 있는 손을 살짝 뿌리치며 "허, 역발산 항우의 손이 무슨 여자 손이야?"라고 하니 녀석이 "아냐, 진짜 손 부드럽다. 어떻게 손이 이렇게 부드럽냐?"라고 반문하며 다시 내 손을 만진다.
이 친구 뭘 모르는 모양인데, 가르쳐 줘야겠군. "이 손 말이야, 지금은 이렇게 부드러운데, 군대에 있을 때 특공 무술을 했던 손이야. 이 두 손의 손등을 땅에 대고 팔굽혀 펴기를 하루에 150회는 했어. 그 뿐인 줄 알아? 양 손의 손가락 세 개씩을 땅에 대고 팔 굽혀 펴기 하루에 100개를 했단 말이야. 그런데 부드럽다는 말이 나와? 그 당시에는 이 손이 워낙 단련되어서 손등이 두껍고, 손 마디가 괭이가 박혀 있었어" 그러자 그 친구, "야, 그런 손이 어떻게 이렇게 늘씬하게 뻗어서 여자 손 같이 예쁘냐? 믿을 수가 있겠냐?"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나는 "야, 믿어라, 믿어. 친구도 못 믿냐?"라고 했다. 그러자 녀석은 웃으며 "응, 네가 하사관 출신이라는 것 알고는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난 녀석에게 "아무래도 유전인가 봐. 우리 아버지도 나처럼 이렇게 손이 부드러우셨거든" 하니 녀석이 "그럼, 틀림없는 유전이구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나니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우리 집 바로 윗 집에 사는 경모 아버지는 내 손을 볼 때마다 손을 붙잡고는 "네 손은 농사꾼의 손이 아니여, 손이 부드러운 걸 보니까 농사꾼 손이 절대 아니여"라고 하셨다. 그 말이 맞아서 그런 것인지, 그 말이 주문이 된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나는 농부가 아니다. 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에게는 내 손이 부드러운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내 손을 가만히 보면 손은 크지만, 손가락이 길고, 늘씬하다. 거기에다 손톱도 작고, 얇은 편이라서 눈으로 보아도 손이 부드럽게 보일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손의 살결도 조직이 치밀하여 살결에 굴곡이 없다. 그러니 살결이 부드러울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남자에게서 손의 살결이 부드럽다느니, 손이 여자 손 같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를 않다. 아니, 멀쩡한 남자를 "왕의 남자"로 만들 일이 있나? "난 말이야, 생긴 것을 봐요. 이준기보다는 훨씬 남자같이 생겼어요. 얼굴 봐요, 어디 여자 닮은 데 있어요? 없죠? 그런데 무슨 부드러운 살결, 여자 손이야? 이 손, 거친 성격의 남자 손이란 말이야. 그 말 취소해요." 당장 이런 말이 입술에서 새어 나올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일일이 이렇게 변명을 하겠나? 사람들아, 내가 변명하지 않더라도 제발 내 손의 진실을 알아다오.
2007. 9. 4.
*위 사진의 손은 제 손이 아닙니다. 제 손은 그보다 훨씬 부드럽게 생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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