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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스
자연과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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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27. 18:08 첫 느낌

 

 

 

일체(一切)가 마야(Maya)이다. 신들도, 인간도, 자연도, 어느 철인(哲人)이 우주의 원리라고 주장한 사랑도.  모든 것은 마야에서부터 나서 마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마야 또한 실재(實在)하는 것은 아니다. 일체(一切)는 부정(否定)의 심연(深淵) 속으로 빠져든다.

 

아아, 모든 존재여. 실재를 고집하는 모든 존재여. 그대는 존재의 면에서는 마야이며 가치(價値)의 면에서는 허무이다. 존재의 뿌리가 마야인 이상, 우리는 자신에게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신(神)은 인간에게 말하였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인간은 그 후로 죽고 또 죽었다. 그들은 영원을 동경했지만 그들의 육신(肉身)의 종말은 그들 자신의 처참함을 드러내었다.

인간은 그 근본이 마야임에도 존재하는 자신을 느끼기에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양식(樣式), 즉 생(生)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아무 것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마야를 처참한 형태로 바꾸어 그것을 호곡(呼哭)하는 것이다.

 

신(神)도 어느 사이 인간의 생(生)에 스며들어 온다. 그것은 인간의 요청에 의해서이다. 인간에 의해 신(神)은 어느 사이 자신의 모습을 벗고 신(神)의 아들로 변모하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 신은 인간의 삶을 영위한다. 그리하여 신은 탄식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육신의 처참한 허무로 그 생의 종지부를 찍는다. 인간은 통곡한다. 신이 곧 자신의 일부임으로서이다.

사랑은 마야이다. 사랑이 인간의 심장 속에서 고동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실재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아아, 사랑의 고통이여. 육신을 짓누르는, 가슴을 애이게 하는 사랑의 힘이여. 그러나 사랑 그 자체도 나의 일부, 존재를 갈망하는 그러면서도 부정(否定)의 아들인 나의 일부이다.

 

여인이여, 그대는 나를 일깨웠다. 그리고 나를 존재하게 하려했다. 그러나 나는 마야이기를 원한다. 인간이면서도, 생의 집착자인 인간이면 서도 마야를 고집함은 더 이상 인간이고 싶지않은 때문이다. 아아, 일체여. 그대는 마야, 영원한 부정(否定)이며 또한 광폭한 힘이다.

 

 

                                                                                                    

                                                                                                                      1984년 12월 25일

 

 

posted by 아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