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컴퓨터를 이용해 문서 작성을 하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하면서, 가만히 생각하며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중학교 입학하고서 잉크를 사서, 처음으로 펜 글씨를 쓰던 때, 그 딱딱한 펜으로 글을 쓰면서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 펜 글씨 교본이라는 것을 사서 펜 글씨를 연습하며 익숙해지려 노력해지만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특히 펜으로 영어 필기체 글자를 쓸 때면 부드러운 곡선의 영어 필기체 문자와 딱딱하게 쓰여지는 펜이 전혀 궁합이 맞지않아 더욱 애를 먹었다. 그렇게 글을 쓰다가 재수 없이 책상에 잉크라도 엎지르는 날에는 노트가 그만 까맣게 물들어 버리곤 했다. 아, 아까운 노트를! 까맣게 물든 노트를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웠던가?
그런 나에게 삼촌이 만년필을 선물했는데, 삼촌이 쓰다가 준 것이었지만, 왜 그리 글자가 잘 써지는지,왜 그리 내 손가락에 딱 맞는지 정말 만년필이 좋기만 했다. 그렇게 하여 잉크로 글씨 쓰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 갑자기 볼펜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처음 볼펜을 손에 잡고 글을 썼는데, 볼펜이 볼펜의 볼 때문에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제 멋대로 돌아가 글씨가 비뚤 비뚤하게 써져서 애를 먹었다. 펜 글씨로 제법 예쁘게 글씨를 썼던 내가 볼펜 덕분에 초등학생 글씨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 당시에 볼펜으로 썼던 글씨가 일기장에 남아있는데,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결국 나는 익숙해진 펜 글씨를 버리고 새롭게 볼펜 글씨를 익혀야 했다.
그런 내가 지금에 와서는 문명의 이기 컴퓨터를 이용하여 문서 작성을 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세상 엄청나게 변했다. 볼펜 하나 제대로 못잡아 손이 비틀거리던 내가 이렇게 문명한 세계에 살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딱딱한 펜, 비뚤 비뚤하게 써지던 볼펜, 글씨를 쓰느라고 손 때가 묻은 노트가 그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또 인간적인지 모른다. 글씨 하나 하나에 남아있는 독특한 개성, 잘못 쓴 글자 그대로 남아있는 한 개인의 실수, 보면 볼수록 정감이 흐른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획일적인 글씨, 실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비인간적인 글씨를 쓰고 또 쓰면서 비로소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몰개성화를 추구하는 세상, 완벽만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 내 자신이 고립되어 살면서 비인간화에 직면하고서야 비로소 한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고, 한 개인의 작은 실수가 용납되는 그런 따스한 세상이 정말 좋은 곳이라는 것을 비로소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너무 말이 어렵구나! 촌놈은 역시 촌놈다워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라고 말하면 어디가 덧나나?
2007.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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