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하늘과 땅은 우리를 무심(無心)하게 대했답니다. 홍수가 나도, 벼락이 떨어져도, 지진이 나도, 쓰나미가 몰려와도 전혀 도와줄 줄을 몰랐고, 지금도 도와줄 줄을 모른답니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낳고, 만물을 기르지만, 정작 만물에 위기나 종말이 다가올 때 모른 척 한답니다. 그러하기에 사람은 환란을 만나서 다치거나 죽고, 우주에 있는 천체(天體)는 다른 천체와 부딪혀 파괴되거나 그 자체의 거대한 폭발과 함께 그 종말을 고한답니다.
바로 그러한 현상을 노자(老子)는 천지불인(天地不仁), 곧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는 말로 설명을 했지요. 하늘과 땅이 무심하지만 그 무심함을 결코 탓할 수가 없답니다. 그러므로 만물은 결코 하늘과 땅이 어떠한 도움을 주기를 바라서는 안된답니다. 하늘과 땅이 만물에 도움을 주는 것은 그 스스로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니 말이죠. 그러므로 만물은 당연하게 여겨야 한답니다. 하늘과 땅이 만물, 곧 그 스스로에게 닥쳐오는 환란 가운데에서 방황하는 만물과 종말을 향하여 나아가는 만물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을 말이죠.
그러므로 그대가 애써 무심(無心)했던 것을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쓴다는 것은 하여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마음이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거북하고 서투른 것이며 그만큼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은 쉽지를 않답니다. 나는 이미 그대가 행동한 것이 얼마나 거북한지, 서투른지를 보았답니다. 그만큼 그대의 내면에서 괴로움이 클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러하기에 나는 그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답니다. 참으로 못난 성정(性情)으로 그대를 괴롭힌 나 스스로를 책망하고 싶답니다. 그렇지만 내가 욕심을 부렸을 때에 그 욕심을 그대가 채워주지 않은 것, 다시 말해서 그대가 무심한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무심함이란 곧 하늘과 땅의 본성(本性)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는 곧 하늘과 땅이 이루어내는 기운(氣運)과 하나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죠.
하늘과 땅이 이루어내는 기운과 하나가 되면 오래 살 수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 그것과 조화를 이루면서 오래 산다는 것은 참으로 하늘과 땅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이 바라는 것이죠. 그러하기 위해서 하늘과 땅 안에 있는 만물은 하늘과 땅의 '무심함'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야만 한답니다. 만물 속에 깃든 욕심을 그 스스로 버리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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