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인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원나라 증선지가 지은 십팔사략이라는 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십팔사략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수업이 끝날 때마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빌려서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그 책을 읽곤했다. 그 책에 나오는 영웅 중에서 특히 가슴을 울렁이게 하던 영웅은 한 여인을 사랑한 남자, 초패왕 항우였다.
항우가 10만의 군사로 해하(垓下)에 진을 친 채 60만의 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한군의 물샐 틈 없는 포위 속에서 군량미가 떨어져 고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랫소리, 항우는 다가오는 자신의 운몀을 자각하고 치밀어 오르는 감회와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때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여인 우희(虞姬)와 명마 추(騅)가 있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천하를 덮었네
시세가 불리하니 추(騅)가 달리지 않네
추(騅)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할까
우희(虞姬)여, 우희여 너를 어찌할까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노래를 마친 항우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십팔사략을 읽은 때로부터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다. 그 후 어느 때인가 나는 카카오톡에서 만난 내 친구에게 바로 이 항우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항우는 멋진 남자였어. 비록 전쟁에 패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의 곁에는 변함없이 그를 사랑하는 여인 우희가 있었으니, 그는 진정 멋진 남자였지. 우희가 그의 곁에 있었기에 그는 사내답게 장렬하게 죽을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바로 그런 항우가 진정으로 사랑한 우희였기에 역사가 사마천조차도 차마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항우의 칼을 빌려 스스로 목을 베어 목숨을 끊은 우희의 슬픈 최후를 사기에 기록할 수 없었던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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