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저녁에 Perhaps Love,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노래를 듣는다. Perhaps Love는 세계적인 컨트리 음악 가수인 존 덴버와 세계 3대 테너 중에 한 사람인 플라시도 도밍고가 함께 부른 크로스오버 음악이다.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결합을 시도한 이 곡은 국내에서 대단히 큰 사랑을받았다.
나는 이 곡을 청춘 시기에 사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는 전혀 듣지 못했고, 군에 입대하여 내무반 생활을 하면서 처음 들었다. 우리 부대의 하사 한 사람이 휴가를 갔다오면서 사온 음악 테이프에 수록된 곡이었는데, 클래식 음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어 클래식 음악에 목말라 있던 나는 이 곡을 참으로 좋아하여 훈련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면 내무반에 있는 녹음기에 음악 테이프를 삽입하여 이 곡을 듣곤 했다.
나는 당시 세계 3대 테너 중에서 플라시도 도밍고를 특별히 좋아했다. 왜냐하면 플라시도 도밍고의 목소리는 나와 어쩐지 비슷한 음색을 가져 노래하기도 좋았고, 그의 얼굴 또한 내가 남자다운 얼굴로 생각하는 그런 중후한 신사의 얼굴이라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존 덴버의 목소리도 좋았지만, 플라시도 도밍고의 부드럽고 따스하면서도 중후한 목소리, 들을 때면 훈련으로 지친 하루의 피로가 저절로 풀렸다. 그의 목소리에 빠져들면서 나는 '지금 이 노래를 부르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나이 정도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나도 플라시도 도밍고 만큼 그런 멋진 사나이가 되어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세월은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흐르고 흘렀다. 그 젊은 청년이었던 내가 이렇게 중년의 후반기에 접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인과 격리되어 군대 내무반에서 사내들 틈에 살아서 사랑에 목말라하던 내가 결혼을 하여 줄곧 한 여인과 알콩달콩 사랑을 해오면서 사랑에 대해 제법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정작 무어라고 정의를 할 것인지 망설여진다. 사랑은 무지갯빛이 아롱거리는 환상적인 것이 아니며, 현실이라는 냉혹한 벽을 마주하기에 거기에는 기쁨과 더불어 슬픔, 눈물 또한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Perhaps Love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보니, 어느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 이렇게 반복해서 듣는 습성이 있다. 내 곁에서 같이 음악을 듣고 있던 집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반복해서 한 곡만 들으면 지겹지 않냐고 한다. 그런데 나는 지겹지를 않다. 곡의 멜로디에 심취하고 화음에 심취하고, 가사에 심취하고, 가수의 목소리에 심취하다보면 지겹기는커녕 정신이 고양되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아마도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다른 여인과 바람을 피우지 않고 아내만을 줄곧 사랑하는 것도 이렇게 한 곡의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도 은근히 나에게 한 곡만 계속해서 듣는 지겨움을 토로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이런 습성에 대해 나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내의 이런 불만 토로가 내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것에 대한 불만 토로가 아닌 것 같다. 깊은 밤 함께 오붓이 잠자리에 들어가야 할 텐데, 음악에 빠져서 자신을 도외시하는 것에 대한 불만 토로가 아닐까? 정말 그런 것 같다. 이제 조용히 잠자리에 들어야지. 그리고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나에 대한 아내의 불만을 달래주어야겠다.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정작 정의하기가 망설여지는 사랑, 관념 속의 사랑이 아닌 현실 속의 사랑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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